비가 쏟아지는 화요일 밤입니다. 금요일이 아닌 날 보내는 메일은 처음입니다. 다름은 아니고 오늘 길을 걷다 내일이 6월 25일 이라는 현수막을 보았습니다. 문득 작년에 썼던 에세이 한 편이 생각났고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짧은 글 즐겁게 읽어주세요. 편안한 밤 보내시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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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젊음을 공짜로 먹었다
볕이 좋았다. 새벽에 일어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아침 이슬을 콧속에 넣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매장 문을 열었다. 익숙하게 원두를 머신에 채워 넣고 샷 품질을 점검했다. 오픈 시간 가장 좋은 에스프레소를 추출하기 위한 과정이다. 8시가 되면 주문이 하나둘 들어온다. 순서 맞춰 한 잔, 한 잔 만든다. 하나하나 하다 보면 어렵지 않다. 오전 업무를 마무리할 때쯤 매니저가 말했다.
"어제 어떤 노부부가 성혁님 찾던대요?"
노부부는 나랑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고객이 직원을 찾는다고 했을 때 대부분은 불만 때문이다. 나는 왜요, 나 또 뭐 잘못했어요?, 잘못한 거 없는데. 순서대로 말했다. 나를 찾는 노부부는 누구일지 생각했다. 매장에 오는 고객들이랑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고 앱을 잘 다룰지 모르는 어르신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도움이 되고 있다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어제 앱으로 주문하는 방법을 알려드렸던 어르신을 생각했다. 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 머리가 하얀 노부부가 매장으로 들어왔다. 따뜻해 보이는 털모자를 쓴 어르신이 나에게 말했다.
"그날 정말 고마웠어요."
나는 아니라고 내가 고맙다고 했다. 어르신이 말했다.
"조금 이따 커피 나오면 나한테 잠깐 와요."
어르신은 굉장히 정중하게 이따가 잠깐 보자고 하셨다. 아, 이 분이었구나.
지난주 평일 오전 근무 중 어르신에게 하트 파이를 한 봉지를 선물했다. 결제 중 지갑에 국가보훈대상자라고 쓰여 있는 신분증을 보았기 때문이다. 어르신 모자에는 국가유공자라고 쓰여 있었다. 내가 왜 그랬는지는 나도 알 수 없다.
“나도 모르게 유공자이신가 봐요,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고 커피는 오른쪽에서 드린다고 했다. 커피를 만들고 나니 그런 마음이 들었다. 저분은 도움을 주는 삶을 사셨을 텐데.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나. 계산대로 돌아가 하트 파이를 결제하고 빵 봉투에 담았다. 그리고 봉투에 조그만 글씨로 적었다.
'나라를 위한 헌신 감사합니다.'
볕이 잘 들어오는 통유리창 앞에 앉은 어르신에게 갔다. 조그만 과자인데 제가 드리고 싶어서요. 감사합니다. 라고 하고 빠르게 자리로 돌아왔다. 괜히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 부끄러움은 어디서 왔을까.
오늘 그 어르신이 다시 오셨다. 자리에 잠깐 오라고 하셨는데 매장이 바빠져 생각보다 늦게 할아버지에게 갔다. 너무 바빠서 제가 조금 늦었어요라고 말하는 나에게 괜찮아요라고 말하셨다. 할아버지는 잠시만요 하시더니 하얀 봉투를 나에게 주셨다. 나는 이게 뭔지 물었다. 할아버지는 그때 정말 고마워서 주는 거라고 했다. 봉투를 살짝 열어보니 꽤 커다란 금액의 백화점 상품권이 들어있었다. 깜짝 놀라 할아버지에게 돌려주었다. 어머 선생님 괜찮아요. 라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그날 정말 고마워서 그런다고 했다. 그냥 받으라고, 그냥 받으라고 했다. 나는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이런 거 받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정말 감사해서 그랬다고 했다. 이런 거 받으면 저 짤려요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할아버지는 계좌 번호라도 알려달라 했다. 나는 그냥 정말 할아버지에게 감사해서 그랬던 거라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월남에 다녀왔다고 했다. 그는 지금의 나보다 어린 나이에 죽어가는 전우를 보았다. 내가 죽을 때까지 알 수 없는 감정이다. 내가 만나지도 못한 나의 할아버지, 아빠가 열두 살 때 돌아가신 아빠의 아빠도 1950년 6월에 총을 들었다고 했다. 나는 정치도 모르고 외교도 모른다. 그들이 마주했던 고통도 알 수 없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덕분에 내가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젊음을 공짜로 먹었다. 나도 모르게 받은 도움이 이렇게 많다.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도움이란 무엇일까. 나는 어떤 둥지를 짓고 있을까. 내 20대는 경찰관이 되고 싶어 살았다.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결과 없는 노력으로 몇 번을 추락했다. 슬펐다. 열매를 피우지 못하고 떨어지는 나뭇가지가 되었다. 주름이 늘어간다. 나이테가 하나씩 늘어간다. 그만큼 두꺼워지는 마음을 안고 산다. 그만큼 ‘나’ 라는 인간이 단단해진다고 믿는다. 떨어지는 앙상한 나뭇가지를 모아 둥지를 짓고 싶다. 날갯짓하던 새들이 머물다 갈 수 있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둥지를 지어보고 싶다. 어떤 형태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게 무엇이든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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