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번째 솔직한 마음
잘 지내셨나요? 아주 오랜만에 편지를 보내는 것 같습니다. 몸이 좋지 않습니다. 냉방병인지 열사병인지 어지럽고 뜨겁고 으슬으슬합니다. 힘듭니다. 고작 한 주 건너뛰었을 뿐인데 아주 오랜만에 만나는 것 같아요. 어색합니다. 잘 지내셨나요. 저는 지냈습니다. ‘잘’이라는 말을 앞에 두기 어렵습니다. ‘잘’ 지내고 싶습니다. 지난 2주 동안 정말 아침에 일어나서 스터디카페에 가고 새벽에는 집으로 돌아오는 그런 생활만 반복했습니다. 지루했지만 해야 하니까 했습니다. 달리기도 거의 하지 못했습니다.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아서 다른 것을 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하루에 한마디도 하지 못한 날도 있습니다. 옛날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동시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 같은 제 모습이 초라했습니다. 맨날 이런 식입니다.
지난 편지에 오타가 많았습니다. 사실 지난 편지뿐 아니죠. 오탈자를 가린다고 쓰고 지우고 쓰고 지웠는데 남아있는 것들이 많더라구요. 오탈자가 있어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오탈자마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꼭 있는 것 같습니다. 오탈자뿐 아니라 세상 많은 부분에서요. 늘 완벽하지 못합니다. 완벽이라는 말을 생각합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완벽한 순간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1등을 했던 적도 기억나지 않고요. 언제나 부족하고 아쉬웠던 것 같습니다. 제가 만족하지 못하는 성격은 아닙니다. 그냥 늘… 부족한 것 같습니다.
공부하다 보면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주의력이 부족해 쉽게 다른 생각에 빠집니다. 근데 또 다른 생각에 빠지면 쉽게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엉망진창입니다. 하루는 무용한 것들을 생각했습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들이 정말 ‘쓸모’ 있는 생활일까 생각했습니다. 고통스럽게 앉아 있어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결국 0(영)이거나 -(마이너스)인데 쓸모없이, 무용하게 시간만 버리고 있는 건 아닌지 한없는 어둠으로 들어갑니다. 지금 이 시간에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고 또 유용한 것들을 해야 하는 건 아닌지 생각했습니다. 결론은 내릴 수 없었습니다. 우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지는 말로 어렵게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얼마나 진부한 말인지 알면서 요즘은 그 말을 달고 삽니다. 가끔 그 말을 꺼내지 못하는 날에는 혼자 앉아서 구직 사이트에 들어갑니다. 들어갈 수 있는 일자리는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어플 속에는 없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 분명한데 제가 그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어서 불안하고 슬프고 외롭습니다. 도대체 일이란 무엇일까요. 이 시험이 끝나면 저는 무엇이 될까요.
누구나 그렇지만 저는 밥을 먹으면 바로 졸립니다. 그래서 가끔은 점심을 먹고 싶지 않습니다. 점심을 먹지 않고 공부하려 하면 배꼽시계가 울립니다. 조용한 스터디 카페에 꼬르륵 소리가 울립니다. 물을 몇 번 마시다 일어나 집으로 가서 간단하게 밥을 먹습니다. 참는 법도 없어서 가끔은 과식합니다. 그렇게 밥을 먹고 책상 앞으로 오면 잠이 쏟아집니다. 그래서 요즘은 운동화를 신고 공부를 하러 갑니다. 보통은 발이 답답한 게 싫어서 슬리퍼를 신고 책상에 앉아 있습니다. 운동화를 신는 이유는 일어서기 위해서입니다. 낮에는 거의 일어서서 공부합니다. 다리와 허리는 아프지만 그래도 졸지 않을 수 있습니다. 스스로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스스로에게 칭찬하는 기분이 듭니다. 더 젊을 때 이렇게 했다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생각이 많아지니 모든 행동에 후회가 실립니다.
시험은 다음 주 토요일입니다. 이번 주 일요일은 제 생일이고요. 생일에 따로 약속은 없습니다. 저와의 약속만 있습니다. 책상 앞에서 공부하는 약속이요. 시험에 좋은 결과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어쩌지라는 이라는 생각은 접어두겠습니다. 긍정 회로, 좋은 생각만 해보겠습니다.
시험이 끝나고 나서는 일들이 몰려있습니다. 시험 다음 날까지 써야 하는 원고가 있습니다. 9월 첫 주는 두 번의 강의와 한 번의 북토크가 있고요. 9월에는 2종의 책을 편집해야 합니다. 제 책 <마음 접질리기>와 <2분 30초 안에 음료가 나가지 않으면 생기는 일>도 재쇄를 해야 합니다. 쌓여있는 일이 기쁘기도 무겁기도 합니다. 다음 편지에서는 더 많은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보고 싶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가을을 기다립니다. 결실이 있다는 가을이요. 9월부터는 이런저런 모임도 만들어보려 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저를 만나주세요. 8월이 지나면 웃을 날이 많으면 좋겠습니다. 진심입니다.
8월 22일 금요일
여름이 힘든, 가을을 기다리는 성혁
추신, 편지는 매일 조금씩 썼어요. 그래서 지금의 감정과 동일하지 않은 부분도 있어요. 오늘 이 편지를 보내는 지금은 몸과 마음이 힘듭니다. 몸은 몸살에 걸린 것 같고요. 마음은 깊은 외로움과 심한 불안이 있습니다. 잔잔하고 싶습니다. 아래 영상은 제가 좋아하는 영상인데요. 영상에서 문상훈님이 이렇게 말해요. 내가 지금 너무 힘든 이유는 내가 내 인생이라는 영화에 주인공이라고 그렇다고. 위기를 극복하는 중이라고. 저도 부디 위기를 극복하는 중이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어려움이 있다면 잘 이겨냈으면 좋겠어요. |